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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서원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586-1에 위치한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 일두() 정여창(, 1450∼150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고, 1566년(명종 21년)에 '남계()'라는 이름으로 사액되었다.

'남계'는 서원 곁에 흐르는 시내 이름으로, 서원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뒤 나촌()으로 터를 옮겼다가, 1612년(광해군 4) 옛터인 현재의 위치에 다시 옮겨 중건되었다. 남계서원은 풍기 소수서원, 해주 문헌서원()에 이어 창건된 아주 오래된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서원 중의 하나이다.

남계서원 전경

남계서원 전경

남계서원은 구릉을 등진 지형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 앞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계천이 흐르고, 그 앞 넓은 들판 너머로 안산(案山)인 백암산이 서원을 마주보고 있다.

남계서원이 위치한 함양 땅은 예로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 하여, 한양에서 볼 때 낙동강 왼쪽인 안동과 오른쪽인 함양은 모두 훌륭한 인물을 배출해내어 학문과 문벌에서 손꼽히던 고을들이다. 안동이 퇴계 이황으로 유명하다면, 함양은 남계서원에 모신 정여창으로 유명한 곳이다.

정여창은 남계서원에서 서북쪽으로 위치한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가터에 세워진 '함양정병호가옥(, 정여창고택)'은 중요 민속자료 제186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는데, 건물 배치 및 외부공간 구성, 사랑채 앞 석가산의 조성 등에서 조선시대 사대부 주거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정여창고택 안채

정여창고택 안채

정여창고택은 건물 배치, 외부공간의 구성, 사랑채 앞 석가산의 조성 등에서 조선시대 사대부 주거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정여창은 김종직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으며 김굉필과 교분이 두터웠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정여창은 김종직의 제자로 사림의 한 사람이라 하여 함경도 종성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호 '일두'는 정여창이 스스로를 '한 마리의 좀'이라는 뜻으로 낮추어서 부르기 위해 지었는데, 이는 정이천(, 1033∼1107, 중국 북송 때의 유학자)의 '천지간에 한 마리 좀에 불과하다'는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건물 배치에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못한 것과 달리 남계서원은 서원의 제향공간에 속하는 건물들은 서원 영역 뒤쪽에 자리잡고, 강학공간에 속하는 건물들은 서원 영역 앞쪽에 자리잡은 조선시대 서원건축의 초기 배치 형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서원이다.

남계서원 배치도

남계서원 배치도

1561년에 완성된 사당은 강당 뒤 가파른 계단을 올라 경사지 위의 높은 곳에 위치하여 강당과 적극적으로 격리시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당 앞 서남쪽에는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데우는 곳인 전사청이 북쪽을 향해 서 있다. 사당에는 정여창을 주벽()으로 하여, 좌우에 정온(, 1569∼1641)과 강익(, 1523∼1567)의 위패가 각각 모셔져 있다.

사당에서 서원 일곽과 그 주변을 내려다보면, 서원 좌우로는 연화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가 에워싸고 있고, 서원 앞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계천이 화림구곡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앞 넓은 들판 너머로 안산인 백암산이 서원을 마주보고 있다.

강학공간을 구성하는 중심 건물인 명성당()은 1559년에 완성된 강당으로 정면 4칸 규모의 건물에 중앙의 2칸은 마루이고 양쪽 각 1칸은 온돌방으로 된 협실이다. 강당 이름 '명성()'은 『중용()』의 "밝으면 성실하다[]"에서 취했다. 강당 건물과 협실의 이름은 성리학에서 수기()를 강조하는 이념 세계를 건축에 반영하였을 뿐 아니라, 정여창의 학덕과 정신적 풍도()를 후대 사람들이 사모하고 우러러본 데서 나온 것이다.

강당 앞 좌우에는 동재인 양정재()와 서재인 보인재()가 서 있다. 동재와 서재는 각각 2칸 규모의 건물인데, 각 1칸은 온돌방이고, 문루인 풍영루() 쪽의 나머지 1칸은 각각 애련헌(), 영매헌()이라고 이름 붙인 누마루로 되어 있다. 동재와 서재는 대지의 경사를 이용하여 누문보다 한 단 높게 조성한 것으로, 지면이 낮은 쪽에는 누마루를 조성하여 조망이 좋도록 하여 공간이 외부 자연으로 연장되게 하였다.

남계서원 연지

남계서원 연지

남계서원에는 다른 서원에서는 보기 드문 연지가 동재의 애련헌, 서재의 영매헌 남쪽에 각각 하나씩 조성되어 있다.

누마루 아래 누문 쪽으로는 1564년(명종 19) 동·서재와 동시에 조성된 연당()이 각각 하나씩 있는데, 두 개의 연당이 서원에 조영된 예는 다른 서원에서는 보기 드물다. 정여창은 송나라 때의 성리학자 주돈이의 『애련설()』에 영향을 받아 매화와 연꽃을 사랑했다고 한다. 누 이름을 애련헌, 영매헌이라고 한 점과 연당 주변에 매화를 심고 연당 안에 연꽃을 심은 점도 이를 반영한다.

제향공간

제향공간

사당은 정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전면에 퇴칸을 구성했다. 내부에는 정여창을 주벽으로 하여, 좌우에 정온과 강익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서원 문루인 풍영루 2층 다락에서 서원을 바라볼 때, 서원은 경사지를 이용하여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으면서도 자연스러움의 정형화를 추구한 형식으로 조영되어, 전체적으로 호방함과 당당함이 느껴진다.

강학공간

강학공간

서원의 강학공간에서 동재와 서재가 강당 앞마당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배치를 하는것은 남계서원에서 비롯되었다.

풍영루

풍영루

풍영루 2층 누마루에 오르면 남계서원 일곽을 조망할 수 있다. 풍영루에는 유교의 보본사상을 알게 하는 내용이 단청으로 표현되어 있다.

          

함양 남계서원

함양 남계서원〈함양 남계서원〉. 사적 제499호.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위치한 서원으로 1552년(명종 7)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여창(鄭汝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경내 건물로는 사우·전사청·명성당·양정재·보인재·애련헌·영매헌·풍영루·묘정비각·고직사 등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남계서원 (한국 미의 재발견 - 궁궐 · 유교건축, 2004. 11. 30.,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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