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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행적

선현행적

< 달성서씨 시조 고려봉익대부 판도판서 달성군 휘 진 사적 > 

  

우리나라의 서씨(徐氏)가 칠관(七貫)이 있는데 달성(達城)이 그 하나이고 그 중에 달성으로 보계(譜系)하는 파가 둘인데 서울에 있어서는 군기소윤(軍器少尹) 휘한(諱閈)이요 재향(在鄕)에서는 판도판서(版圖判書) 달성군(達城君) 휘(諱) 진(晉)으로써 시조(始祖)를 삼았다. 대개 판도공이 이 땅에 식읍(食邑)하였고 네 번 전하여 구계선생(龜溪先生)에 이르러서 세종조(世宗朝)가 선생이 살고 있는 달성(達城)이 국가의 관방(關防)이라 하여 국가에 받치니 나라에서 보상을 주기로 하였으나 보상을 사양하고 그 대신 본읍의 읍민들이 관아에 바치는 상환곡을 석당(石當) 닷되식 감하게 하니 읍민이 그 베품에 감복하여 구암사를 세워 향사하였다. 아~ 지금으로 부터 판도공은 칠백년 전이다. 세대가 멀고 문적이 증거가 없다. 譜冊(보책)에 다만 高麗奉翊大夫(고려봉익대부) 版圖判書(판도판서) 達城君(달성군)이라고 실렸을 뿐이고 그 외에는 고증할 수 없으나 오직 公州萬姓譜(공주만성보)에 이르기를 판도판서 공은 중랑장(中郞將) 閈(한)의 증손이요, 檢敎軍 器監(검교군 기감) 愼(신)의 손이요, 密直司使(밀직사사) 無疾(무질)의 자요, 禮儀判書(예의판서) 振威(진위) 李自英(이자영)의 외손이라 하였다. 부인은 草溪周氏(초계주씨)인데, 父에는 檢敎將軍(검교장군) 穉(치)요, 祖에는 少府少監(소부소감) 鉉(현)이요, 曾祖에 判軍器事(판군기사) 부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한 증거가 되나 그러나 先父老(선부노)께서 그 일을 신중히 여겨서 감히 上系(상계)에 올리지 못하였다. 또 麗史(려사)에 이르기를 新羅(신라) 阿干大夫(아간대부) 諱 徐神逸(서신일)씨가 일찍이 포수에게 쫒겨온 사슴을 숨겨준 일로 인하여 자손이 번성되었다고 한다. 지금 利川徐氏(이천서씨)의 시조인데 여러 사람은 서씨는 모두 阿干公(아간공)의 자손이라고 한다. 또 전하기를 版圖公(판도공)이 箕子(기자)의 사당에 拜謁(배알)하고 지으신 글이 있는데 이르기를 "聖敎(성교)가 하늘같이 위대한지라. 아! 짐짓 이 사당 제사를 동쪽에 모셨다. 君臣父子(군신부자)가 中夏(중하)를 같이 하였고, 禮樂詩書(예악시서)는 四夷(사이)에 미치었다. 천지간의 정은 다 내가였고, 완효하여 不識(불식)함은 昏微(혼미)로 부터 하였다. 朝鮮(조선)의 근본이 商賢(상현)의 敎化(교화)에 있는데 정사가 착하고 백성은 순박하니 실상으로 마땅한 바라 하였다." 野乘(야승)에 기록된 바가 이러한데 또한 적당한 증거는 없다. 春秋(춘추)의 例(예)에 의심은 의심으로 전하고 미더움은 미더움으로 전하나니 그 비슷한 것을 어디서 疑(의)하고, 信(신)하는 사이에도 可이 그 疑心(의심)을 臆測(억측) 하면서도 문득 꼭 믿는 것은 옳치 못하다. 마땅히 博古(박고)한 자를 기다려서 상고 할 것이다. 公(공)이 삼남을 두었으니 장남 奇俊(기준)은 奉翊大夫(봉익대부) 密直司使(밀직사사)를 지냈고, 門下侍中(문하시중) 贊成事(찬성사) 증직과 達川君(달천군)에 追封(추봉)되었으며, 차남 宥(유)는 봉익대부 밀직사사와 判典農寺事(판전농시사) 上護軍(상호군)이었고, 삼남 遠(원)은 둔암(遯庵)의 고조(高祖)시며 생원이었다. 奇俊(기준)의 아들 穎(영)은 金紫光祿大夫(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 찬성사를 역임하고 達城君(달성군)에 封爵(봉작)되고 諡號(시호)는 忠靖(충정)이시다. 宥(유)의 아들 고(고)는 봉익대부 淸州(청주) 尙州(상주) 牧使(목사)를 역임하고 대(代)가 절(絶)하였고, 遠(원)의 아들 衷(충)은 문과 大司諫(대사간)을 지냈다.

찬(贊)해 가로되

조정에 벼슬을 하여 한 성(城)의 녹(祿)을 먹으니 그 덕(德)을 세워서 사업을 이룬것을 알 것이요 후손에게 복(福)을 주어 백세토록 번창하니 그 근원이 멀고 흐름이 긴것을 알았도다 하늘이 백성을 낳으시고 우리 후인을 돈독케 하니 이지러지지도 아니하며 무너지지도 아니할 것이니 오직 달성이 천억년을 이에 징험(徵驗)할지어다.

 

                                            후손 석화(後孫 錫華) 문집 13권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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