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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행적

선현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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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쪽의 넓은 보계는 족친을 돈우하게 함이 한결같이 선조를 존숭하고 근본을 존중하는 뜻이라 무릇 선조의 자취가 있는곳에 반드시 공경을해야 할 것이며 그 기초를 비롯한 발원의땅에 더욱 정성을 바쳐야 한다 내 일찌기 송경(松京)의 유수로 있을 때 길변의 비석을보니 일구를 둘레해서 줄지어 세워있어 비석이 담처럼되어 있었고 거북의 받침돌과 단청한 비각들은 마을거리를 더욱 빛나게 비치어 있었다 대게 우리서씨로서 이땅을 다스린자는 앞뒤로 서로 바라보게 되었으니 도인들이 그인해를 끼친 존경의 특이함이 이같은지라 내가 배회하면서 존경하는마음이 유연하게 감애를 일으키니 단지 직책을 칭송않는다고 근심하는것이 아니라 오직 선조에 욕을 끼칠까 두려운지라 지난해(1833년)에 영남절도사로 안찰할 때 달성은 곧 우리 선조가 살던 관향이요 달성의 구암은 선조를 봉향하는곳이며 부내의 오른쪽 영역의 모든 고을은 선조께서 민정을 보살피던 땅이라

돌이켜 생각건대 지금 세대가 잠자코 멀다하나 끼친 꽃다운 남은 향기가 산천의 초목과 주로 빈터 우물사이 흩어져 있어서 오히려 그것을 얻어 볼수 있으니 그 후손으로서 공경심을 일으키고 감모를 일으키느것은 이것 송경의 비석에 비하여 한갓 먼저된 자취가 아닐뿐이다 우리 달성의 종족은 중세부터 후손이 번성해서 고관과 대사의 방백고의 명을 배수하고 거의 모든 길에 두루 퍼져있으나 특히 본도에만 드문지라 선조후 90년간에 화곡공(휘 원리) 몽어상공(휘 문중) 양공이 서로 이어서 경상감사로 오셨고 그뒤 150여년만에 불초가 비로서 결원을 이어서 와 임하였어니 무릇 이땅으로 우리의 발원지로 해서 내가 이직을 받은 것은 드물게 얻은 남녀지인즉 불초에 있어서 선조의 뜻을 있고 후 헌의 도를 술한다면 더욱 마땅치 않을것인가

이땅을 밟은즉 우리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생각한다면 그마음을 본받아 갸져야 할 것이다 오직 우리 모든 일가가 영내에 산재하는자는 비록 친하고 멀고 가까운 구별은 있다 할지라도 모두 우리의 같은 근원이거든 하물며 우리 종족중에서 도백 현령으로 나가고 다시 세분이 각도에 래구한 일은 우연한 것이 아닌 것 같은지라 이에 9월 신묘일에 널리 모든종족을 모아서 화수회를 할 때 모인자가 6백여인이라 드디어 시를 지어 그 즐거움을 쓰게되고 돌을 새겨 그일을 기록하며 연회는 반드시 달성에서 개설하고 돌은 반드시 본원에서 세우니 이것이 조상을 존경하고 근본을 존중하게 여기는 바이니 미루어 족친을 돈독하게 여기는 양(養)이라

아 내가 대대로 경성에 살면서 발치를 조정에 버금하고 있어나 고향의 선비를 품은 심정이 간절하지 않을 때 없어면서 명을 전해 부림이 없어 구름가린먼 교남을 건내기 어럽더니 지금에야 다행이 성은을 입어 드디어 미복감지로 부모를 봉양할 수 있으며 또 모든 종인과 더불어 하루의 즐거움을 이루어 백세의 정을 도탑게 얻었으니 이것이 어찌 성상(임금)의 주신바로서 우리선조의 끼치신 음덕이 아니랴 무릇 우리 같이 모인 인사로서 힘써 몸소 심고 농사를 배워서 부지런하고 겸소하여 농사에 힘쓰고 집에 있을때에는 효제에 도탑고 세상에 나오면 예절을 갖추어서 큰 은혜를 갚는 것으로 써 선조의 감취를 주지 말아야 하오니 원컨대 모든 종인과 더불어 여기에 힘씁시다

숭정기원후4갑오(1834)년 9월 관찰사 희순은 아울러씀

 

파는 다르다 할지라도 한 근원에서 나왔으며 희순의 본관은 달성이라 우리서가 본도에 관찰의 인부를 차기 세 번이라(안동 일직 소호리 유문)

안렴 절도 백여년인데 상환곡을 감하신 전석의 자취를 추모하세(안의 현감 유여)

사우(숭현사)를 우르러보니 옛거리를 느끼니 여기에 종족을 모음이 마땅하다( 영천 언하동 )

지금에야 한가지 옷깃을 가지런히하여 꽃나무아래에서 친족끼리 정담을 나누네(삼가현감 용보)

영호에 색거한 것 한스러우나 기쁘게 술잔들고 즐거워라(신령현감 석보)

슬프다 조상이 살던터이라 곧 이땅에서 아름다운 모임을 이루니(삼가子 필순)

종족이 도타이하여 그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동성보다 더 좋은 것이 없네(진사 상정)

누가 허심탄회로 대하려나 다른날에 오는자들은......(대구산격동 표)

반드시 석면의 글을 보시라 (희순) 연구명서

 

참고: 위 소개드린 족회사적비는 우리나라 문중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귀한 사적에 속하며, 현재 구암서원(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 17)내 초현당 비각 앞에 사적비에 새겨진 원문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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