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에 이르지 않았는가뜰의 상 하를 잇는다 하였고 또 이르되 뜰에 오르내린다 하였으니 선왕(先王)이 예를 제정하여 묘당을 세우는것은 조종을 빛나게 함이라 이미 당편 가운데 흩어진 영영과 자기의 정신으로 더불어 서로 느끼며 재게하고 정묘에 묵으면 반반하게 계시는듯 하므로 엄숙히 공경하고 문에 들어서면 그 의용을 승안하는것 같고 예를 갖추어 돌아 뜰을 나오면 그 기침하는소리가 들리는듯하니 이것이 선왕이 묘우뒤에 재실을 세우는뜻이라
또 효자와 인인이 차마 그어버이를 잊어버리지 못함이라 삼년안에 묘살이를 하면서 그 형용이 방불한 생각 을 이루는 것은 다 뜰을 이어서 오르내리는 뜻이다
그러나 효자를 보면서 사모함이 무궁함으로 선왕의 예를 제정할때 한도를 두었기에 3년밖에 시묘살이를 못하게 되는까닭에 춘추로 제향하는 것이 특히 묘당에 있는것만은 아니요
묘의 침전에도 있으며 또 재실에도 있는것이니 이것으로 선조의 영영을 승봉하는곳으로 함이니 이것은 예의를 아는군자라면 가히 훌만이 못핳바이다
이제 저 송추에 눈을 부치는것은 오히려 곡강의 향원에 흥감이나거든 하물며 조종의 의관이 묻힌 구역이며 존경한는재실이겠는가
희생도 여기서 베어나뉘며 그릇도 여기서 씻어며 주장과변두도 여기서 깨긋이 아니함이없어니 이것을 문 헌판에 구해서 말하여 저기라 할까여기라할까
슬프게 느낌을 일으키면 조종의 영영이 오르내리듯이 재당은 그효사를 감발하는곳이라
그렇다면 재사의 설립이 어찌 예가의 무겁게여기는바가 아니냐 추모하는효성은 반드시 사람 사람마다 두텁고 엷은데 돌리지않는자많으며 쉽사리 여기는 까닭에 뜰을 이미 오르내리지 않을 것이니 문미 사이에 선령을 잇닿게하여당에 재계를 이루는것이니 이것 예를아는자는 세도를 위하여 탄식하는것이다
우리 고을에서 서씨가 대대 자효로 추묘 원모하는 성의에 도타운것은 유속에 초월하여 청제내 선영아래
재실을 경영하여 세우고 춘추명절에 종족을 모아서 장차 일을 재소에서 하게되니 무릇 집이 몇동활사와 지숙의 구분이 다 갖추어 진지라 청호를 끼고 채약산을 등져서 8공(公)을 뫼시는정침으로서 가운데 풍기를 감추었으며 전후 좌우에산수가 둘러 옹호하여 물러섰다가 나아가 취하는듯하니 참으로 사대부가의 옷과 신을 감추운곳이라 이당에 오르면 묘목이 무성하고 빽빽하며 까마귀가 날아 모이니 감복하여 슬픈마음이 뭉게뭉게 일어나니 산림이며즐거운 산수여 묘목의 감사에 눈을 돌리니 특히 곡강의 향원이 아니라 이것인즉 재당을 설립하게됨이 어찌 조종을 존경하는 땅이아니냐
서씨가 제처사 이래부터 세세착한덕이있고 자손이 서로이어서 이당에 그종족이 모인것을 보면 얼굴에 화기가 감돌고 엄연 공경하는태도는 조종의 하늘에 계시는 영영이 묘정에 오르내리시어 복을 주실것인즉 서씨의 종족이 반드시 보호 를 받아서 그복을 누릴것이라 세인의 조종에 박하게 하는것을 본다면 노기가 등등하여 조종의 영역밑에서 꾸짖고 졸기로 부르 짖으니 영혼이 편치못하고종족이 화목을 잃게되 남의 이목을 놀라게 하는자 어찌 서로 근면하지 않을까 아 아름답도다
기유년 (1789년)윤오월 하한에 하성(창녕) 조덕신 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