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구시민의 휴식처인 達城(현 달성공원)은 신라 沾解尼斯今(첨해니사금) 15년에 이루어졌다. 자연지형이 반 인공축조로 된 土城(토성)이며, 성벽은 평균 약 30m~40m 정도이며, 성곽은 1300m에 거의 5각형인데,성 벽의 최고의 北角(북각) 언덕은 그 높이가 약 60m 표고이다. 황토흙과 크고 작은 잡석들이 혼합된 성벽의 토석속에는 옛날의 기와조각들이 많이 섞여있다. 부옇고 두툼한 그 기와조각들에 선인들의 지혜와 피땀이 어려있고, 흥망성쇄가 스쳐간 생채기임을 몰랐던 후생들은 그 기와조각을 주워다가 빻아서 놋그릇 닦는 연마재로 요긴히 쓰기도 했다.
하늘을 찌를듯 높은 느릅나무, 회나무, 이팝나무, 고욤나무들도 울창하다. 특히 남쪽 기슭의 장수나무는 밑둘레가 거의 4m가 넘는 거목으로 천년의 신비를 간직, 그 장엄함에는 외경심마저 느껴진다. 지금은 達城徐氏(달성서씨) 遺墟址(유허지) 碑(비)가 당당히 서 있지만, 왜정치하에는 인본인들의 신주인 神社(신사)가 들어서는 치욕이 있기도 했다.
족보의 기록에 의하면 성안에는 三井三池(삼정삼지)가 있다고 되어 있으나, 우물자리와 못의 흔적은 알길이 없다. 전하는 傳說(전설)에는 옛날 장수가 이 達城山(달성산)을 머리에 이고 날아오니 빨래하던 처녀가 그 광경에 놀라서 "아이고 산이 날아온다"라고 외치자, 그 소리에 놀라 장수가 이고 있던 산을 그만 그 자리에 놓아버린 것이 달성(현 대구시 비산동)이 되었다고 한다.
達城(달성)의 아래 절벽 밑을 흐르던 강이 달서천인데, 옛날에는 지금의 신천이 여기로 흘렀으며, 그 건너편에 "청어샘"이 있었다 전해온다. 옛날 신천이 흐를때는 그 물이 참으로 맑았으리라. 지금은 곧 達城徐門(달성서문)의 일화이다.
옛날 達城徐氏(달성서씨)의 遠祖(원조)가 달성안에 살았는데, 학문과 도덕이 고결하며 積宣(적선)을 많이 하여 遠近(원근)에 배움을 얻으러 오는 길손이 많았다. 달성 밑에 물을 긷던 샘이 있던 바, 손님이 한 분이 왔을 때 물을 길으면 청어가 한마리 건져지고, 손님이 두 분일때면 두 마리가 건져졌다. 육지 한 가운데서 바닷고기인 청어가 건져졌다는 神話(신화)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어느날은 한 도사가 청어반찬 대접을 받고 가면서, 서씨 터전의 地氣(지기)로 보아, 후손에 8정승이 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광복전까지만 해도 대구지방에 자자했던 이 說話(설화)를 기억하는 이 크게 없어 이렇게 몇마디 흔적으로 후손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