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내용은 조선 영조44년(1768) 경에 간행된 대구읍지(大丘邑誌)의 성지城池조와 인물人物조에 실린 기록을 국역하여 원문과 함께 옮긴 것입니다.
* 이 읍지는 국내학계에서 파악한 대구읍지 중 가장 오래된 읍지로 추측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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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城池
달성
부府의 서쪽으로 4리에 있으며 돌로 쌓은 둘레가 944척이고 높이가 4척이다. 성안에 세개의 우물과 두개의 못이 있고 군창軍倉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구계 서침 선생이 대대로 달성에 살았는데 본조本朝 세종 때에 나라에서 달성을 보수하여 성참城塹으로 쓰고자 남산의 옛 역참터를 하사하여 달성과 바꾸기를 명하며 그 상을 논하자 선생이 상을 사양하면서 대구 읍민邑民들이 관가에 납부하는 환곡還穀의 이자를 한 섬당 다섯되씩을 감해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관한 내용은 구암서원龜巖書院 묘정비廟庭碑에 모두 실려 있다.
達城
在府西四里石築周九百四十四尺高四尺內有三井二池有軍倉今無龜溪徐先生沈世居達城而本朝 世宗朝以達城可修城塹命賜南山古驛基換其地論其賞先生辭焉請減一邑官糴耗每石五升備載龜院廟庭碑
인물
人物
서침 정평공貞平公 서균형徐鈞衡의 아들이다. 호는 구계龜溪이고 벼슬은 제처사制處使에 이르렀다. 대를 이어 달성에 살았는데 세종조에서 달성이 천연적인 성지라는 소문을 듣고 그 땅을 바꿀 것을 명하고 또 그 보상을 논의하매 구계공이 보상을 받지 않고 읍민이 관가에 납부하는 환곡의 이자를 다섯되씩을 줄여주기를 청하니 임금께서 그 뜻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대구읍민에게 다섯되씩을 줄여주고 또한 남산의 옛 역참터를 하사하였다. 읍민이 구계공의 혜택에 감동하여 구암서원에 제향祭享하였다.
徐沈 貞平公鈞(원문에는 均인데 誤字)衡之子號龜溪官至制處使世居達城 世宗朝聞天作城池命換其地且論其賞公不受請減一邑官糴之耗五升 上嘉其志特減本府五升耗且 賜南山古驛基邑人感其澤享于龜巖書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