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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행적

선현행적

<5세 유명 조선조 통정대부 삼남균전제처사 귀계공 서선생 휘 침 사적>   

 

옛날 龜溪先生(구계선생)이 達城(달성) 숲속에 숨어 살면서 가시문도 좋고 졸졸 흐르는 물도 즐거우니 굶은들 어떠하리 聲聞(성문)과 榮達(영달)을 구하지 않고 門弟子(문제자)로 더불어 經典(경전)을 이야기하고 道를 講論(강론)하며 비록 궁하게 살면서 獨善(독선)을 하며 미상불 백성에 어질며 물자를 사랑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탕으로 삼았다.

世宗朝(세종조)때에 南邊(남변) 三浦(삼포)에 해마다 外警(외경)이 있고 列邑(열읍)의 성을 지키며 바야흐로 엄숙하였다. 朝廷(조정)에서 公이 살고 있는 지형이 말(斗)과 같이 천연적 참호로 城(성)이 된다는 말을 듣고 명하여 남산 옛 역터로 그 집과 바꾸라 하시고 인하여 그 상을  논하고 장차 世祿(세록)을 더하려 하니 公이 사양하여 받지 않고 이르되, 임금의 땅이 아님이 없거늘 무엇 때문에 상을 받으오리까. 굳이 사양하고 이에 그 一家의 私恩(사은)보다는 만민이 골고루 혜택을 입기만 같으리요. 하며 本邑(본읍)에 償還穀(상환곡)의 利子(이자)를 한섬에 五升(오승)을 감하여 주시면 영원토록 國家(국가)의 特惠(특혜)가 되옵기를 간청하옵니다. 하니 朝廷에서 의리가 있다하고 허락하여 드디어 一邑의 특혜를 이루었다. 백성들이 지금까지 혜택을 입고 頌德(송덕)을 말지 않으니 옛글에 이른바 힘써 덕을 심으면 덕을 곧 받게 되나니 백성이 인덕을 잊지 않는 것은 公을 두고 이르는 것이 아니랴?

公의 諱는 沈(침)이요,字는 聖默(성묵)이며 號(호)는 龜溪(구계)니 達城徐氏(달성서씨)라. 系出(계출)은 高麗 版圖判書(판도판서) 달성군(達城君) 諱(휘) 晉(진)이니 公의 高祖요, 曾祖의 諱는 奇俊(기준)이니 承奉郞(승봉랑) 都官左郞(도관좌랑)이요, 祖의 諱는 穎(영)이니 重大匡(중대광) 達城君이요, 考(고)의 諱는 鈞衡(균형)이니 恭愍王(공민왕) 庚子(경자)에 등제 하였으며, 곧 圃隱(포은)과 同榜(동방)이다. 奉政大夫(봉정대부) 政堂文學(정당문학)에 시(諡)는 貞平(정평)이시다.

선생이 朝鮮朝(조선조)에 들어와서 벼슬하여 通政大夫(통정대부) 典醫少監(전의소감)이 돠었으며 世宗朝(세종조)에서 재조(才操)와 덕망으로 뽑히여 三南均田 制處使(삼남균전 제처사)를 제수하였다.

公이 일찍 圃隱 鄭先生의 문하에서 자기를 위하는 배움에 종사하며 講(강)하고 묻고, 전하여 익히며,오직 날로 부지런하여 심한 병이 아니면 문득 새벽에 일어나서 향을 태우고 글을 읽어며 聖賢(성현)의 訓戒(훈계)에 잠심하고 완비하였다. 이뿐 아니라 맛좋은 음식이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이 進學(진학)의 공부가 늙어서 더욱 도타웠다. 生從(생종)들이 문에 이르러 학업을  요청하는 자는  才能(재능) 따라서 교육을 베풀어 많이 성취시키었다.

아! 지금으로 부터 公의 在世(재세)가 거의 四百餘年이라, 年代가 이미 멀어서 여러번 병화를 거쳤고 文獻(문헌)에 고증할 수 없어서 公(공)의 生卒(생졸) 年月 및 道學(도학)의 얕고 깊은 것과 지난 벼슬이 많고 적은지 함께 그 자세함을 알 수 없으나 오직 償還穀(상환곡)을 감한 것 그 한 일만이 기리 혜택이 郡民(군민)에 미친 것이 깊은 까닭에 덕을 느끼며 稱頌(칭송)하여 잊어버리지 않은지 오래이다. 家家戶戶(가가호호)이 제사를 받들고져 원하기에 이르렀어 顯宗(현종)乙巳年에 崇賢祠(숭현사) 창건후에 龜岩書院(귀암서원)에 移建(이건)하여 제향하였다.

配(배)는 固城李氏(고성이씨)에 麗朝 東宮詹事(동궁첨사) 乙芳(을방)의 따님이며 判右軍(판우군) 隱庵(은암) 伯(백)의 손녀이라. 三男一女를 두었으니 文翰(문한)은 廣興倉(광흥창) 副丞(부승)이요, 文幹(문간)은 문과에 縣監(현감)이요, 文德(문덕)은 郡守(군수)로 叔父(숙부)인 府使公(부사공) 습의 후로 출계 하였으며, 따님은 縣監인 權自和(권자화)에게 가다.

묘는 八公山(팔공산) 中心洞(중심동) 艮坐(간좌) 두던에 있으며 封墳(봉분)이 집체 같이 높았으니 누가 공경을 일으키지 않으리요. 부인 李氏(이씨)과 더불어 上下墳(상하분)이었는데 2013년(癸巳) 6월에 부인을 공묘(公墓)에 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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